세개를 동시에 잡으려다, 2년을 허덕였습니다. 그 시간이 오히려 제 전환점이 됐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예요. ☕
💌 오늘 편지에서 전할 이야기예요.
➊ '나다움'이 함정이 될 때
➋ 결과가 안 보여도 괜찮은 이유
➌ 번아웃이 반복되는 진짜 이유
➍ 이제는 ‘시간축’을 점검할 때
➎ 계획이 어긋날 때 보이는 기회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를
살아내는 분이라면, 오늘 레터가 당신 얘기입니다.
읽는 데 5분, 남는 건 한 달.
기록과 성장, 나다운 삶을 설계하는 인사이트를 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단수민입니다.
2024년 3월 이후로 처음 보내는 레터예요.
오래 기다리셨다면 정말 감사하고, 저를 기억하지 못하셔도 괜찮아요.
오늘 이 편지로 다시 인사드릴게요.
2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직장에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고, 가정에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기면서 그림 작업과 콘텐츠를 만드는 시간은 자꾸만 뒤로 밀렸어요. 진척이 더디게 되면서 레터도 멈추게 되었습니다. 쓸 수 없던 게 아니라 쓸 자격이 있는지 몰랐어요. 뭔가를 이루고 나서, 정리가 되고 나서 써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흐트러진 채로, 아직 진행 중인 채로 꺼내는 이야기. 그게 오히려 혼신기록이 해야 할 일 아닐까?’
일하고, 기록하고, 가끔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시간을 보내면서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됐어요. 나를 키워가는 데 가장 강한 도구는 기록이라는 것. 어제의 나를 넘어서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오늘의 나를 기록해두는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씁니다.
기록에서 신기록으로 — 혼신기록.

#1
'나다움'이 함정이 될 때
생계를 위해 해내야 하는 일,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가는 것, 창작과 콘텐츠처럼 꿈을 위해 쓰는 시간…
많은 분들이 그렇듯, 저 역시 꽤 오랫동안 '일·사랑·꿈', 세 개의 컵에 물을 부어왔어요. 셋 다 중요하다 보니 우선순위를 정해도 당장 눈앞에 닥친 것,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그때그때 다시 우선순위가 되죠. 결국 셋 다 병렬로 처리하려다 이도저도 못하는 병목이 옵니다.
그 시기에 SNS가 저를 더 힘들게 만들었어요. 하나에 몰입하는 사람들,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것 같은 사람들.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들, 이미 하나를 크게 이룬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자극적인 콘텐츠에 대한 반복적인 노출.
그 사이 은연중에 스며드는 메시지가 있었어요. '나답게 살려면 하나에 집중해야 해.' '진짜 원하는 게 있다면 다른 건 포기할 수 있어야 해.' 스스로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해도, 그 말들 앞에서는 마음의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어요.
그 말들이 틀린 건 아닙니다. 근데 저는 그 말들을 들으면서 자꾸 죄책감을 느꼈어요. 세 개의 컵을 동시에 채우려는 나는 뭔가 잘못 살고 있는 건가, 라는 느낌. 이상적인 '나다움'을 기본값으로 두고, 거기에 못 미치는 현실을 실패로 규정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 생각에 변화가 없으면, 스스로를 갉아먹겠다.'
‘건강한 나다움’을 추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지금 이 순간 ‘나로서 살아가는 삶’을 먼저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직장, 가정..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들에 토대를 두어야, 나다움이라는 나무의 뿌리를 내릴 수 있어요. 이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는 순간,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체처럼 마인드의 면역력을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2
결과가 안 보여도 괜찮은 이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수민아, 무기력할 때는 몸을 움직여야 해’
반려자의 말에 정신을 환기시키기 위해, 늦은 밤 집 옆에 흐르는 작은 개울가를 걸을 때였습니다.
그 날의 개울은 표면이 참 잔잔했어요. 마치 평평한 바닥처럼 멈춰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풍경이었는데, 그날은 왠지 그 물을 한참 바라봤어요. 그때 번뜩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겉으로 멈춰 보인다고, 흐르지 않는 것은 아니구나.'
표면이 고요하다고 해서 멈춘 게 아니었어요.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었을 뿐. 물은 흐르고 있었습니다.
잔잔하게, 조용하게…
그 순간 저를 돌아봤습니다. 콘텐츠를 자주 올리지 못하고 있었고, 눈에 보이는 성과도, 주변에 말할 수 있는 근황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정체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직장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었고, 가정을 지키고 있었고, 다시 창작으로 돌아오기 위해 버티고 있었어요.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방향을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단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어요.
삶의 모든 역할을 짊어지고 책임지는 것 자체가,
이미 나만의 속도로 나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흐르고 있었어요.
#3
번아웃이 반복되는 진짜 이유
비교하던 시선이 조금씩 안으로 향하기 시작하자, 이번엔 번아웃의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컵 하나를 채우기 위해 1년을 온전히 몰입하면 목표치의 70~80%는 채울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듯, 저 역시 일·사랑·꿈 세 개의 컵을 동시에 채우려 했어요. 그 결과 1년이 지났는데 각 컵엔 20%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컵 안의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습니다.

'세 가지 모두 이룬 게 없으면?'
'하나에 몰입했더라면 더 나았을까?'
채우려고 아등바등했는데, 있던 것마저 사라지는 느낌. 그게 컵 안의 물을 끓게 만들고, 있던 것마저 증발시키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도 무거웠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와도 쉬는 느낌이 없었어요. 뭔가를 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쌓이지 않는 것 같은 막막한 감각. 그게 매일 반복됐어요.
삶의 변수에 대응하다보면 우선순위가 계속 바뀌었고, 그때그때 닥치는 것에 끌려다니다보니 결국 셋 다 병목이 왔습니다. 마치 앤트밀(Antmill) 현상처럼요. 페로몬 오류로 인해 방향이 틀렸다는 걸 모른 채, 수천 마리의 개미가 끝없이 원을 그리며 돌다 쓰러지는 것처럼. 저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방향을 잃고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던 겁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이 없었던 것. 진짜 문제는 이거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번아웃이 분기마다 반복됐던 이유였습니다.
#4
이제는 ‘시간축’을 점검할 때
그즈음 다시 집어 든 책이 『원씽(One Thing)』이었어요.
예전엔 제목만 보고 넘겼습니다. "하나에만 집중하라"는 말이 세 개의 컵을 동시에 채우려는 저한테는 희망고문처럼 들렸거든요. 이미 충분히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책에서까지 그 말을 들어야 하나 싶었어요.
읽고 나서야 원씽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원씽은 '하나를 집중하기 위해 다른 것을 다 버리라'는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삶에 존재하는 것들을 포기하지 말고 함께 공존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특정 기간 동안 더 밀도 있게 집중하고, 이후에는 다른 것에 순차적으로 집중하는 방식이라는 것. 삶의 축을 기간 단위로 조정하면, 세 개의 컵을 포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어떤 컵에 집중해서 물을 채우느냐를 정하는 것, 그게 전부예요.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가 깨달은 것은,
기간 단위로 집중할 우선순위는 '인생의 시간축'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닥쳤거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는 게 아니라, ‘어떤 요소가 지금 내 삶의 시점에 더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 거예요.
즉, 인생의 시간축을 세운다는 건 삶의 각 단계마다 집중해야 할 것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것, 지금 이 시기에 해두어야 나중이 더 단단해지는 것. 그 감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거예요.
저에게 그것은 반려자와 함께 준비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시 이렇게 정했습니다.
1분기 : 꿈을 위한 기반 다지기 (시스템 구축, 회고 모임 운영)
2분기: 일에 집중하며 꿈과 연결하기 (업무에 유튜브 쇼핑 적용)
3분기~: 가정에 집중 (임신 및 자녀 계획 준비)
1분기는 콘텐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지속 가능한 작업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크리에이터를 위한 작업 지속 모임을 만들고, 소수의 동료들과 함께 흐를 수 있는 작업 습관 루틴과 시스템을 세웠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었지만, 처음으로 흔들리지 않는 기반이 생긴 느낌이었어요.
2분기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연결했습니다.
크리에이터로서 늘 관심을 두고 있는 유튜브를 업무에 접목하기로 했습니다. 국내 도입 초기였던 유튜브 쇼핑을 내부에 직접 설득하고 도입했어요.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일을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 그 차이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꿨습니다.
3분기부터는 오래 미뤄왔던 임신 준비에 에너지를 집중했습니다.
두렵기도 했고, 홀가분하기도 했어요. 이 과정에서 참 많이 흔들렸습니다. 호르몬 변화, 업무 스트레스, 콘텐츠에 대한 갈증이 한꺼번에 몰아칠 때마다 저를 잡아준 것은 1분기에 세팅해 놓은 주간 회고 습관과 동료와의 연결이었어요. 온 신경이 다른 곳에 쏠려 있을 때도, 잔잔하게 흐르는 사이클을 만들어 줬습니다.
#5
계획이 어긋날 때 보이는 기회
이 시간들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실패의 신호가 아니었어요.
계획 자체가 잘못 설정되어 있었거나, 무리하게 짜여 있었거나, 삶의 방향성이 빠져 있었다는 신호예요. 그 신호를 빨리 캐치할수록 나침반을 다시 조정하고 길을 다시 설계할 수 있습니다.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이, 나침반을 잡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타이밍인 거예요.
돌이켜보면 세 개의 컵을 동시에 채우려 했던 것 자체가 ‘이상적인 나'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그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숨이 트였어요. 모든 것을 지금 당장 완벽하게 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긴 호흡으로 가면 된다는 것. 그게 지속 가능한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내 삶의 시간축을 기준삼아, 분기 단위로 집중할 대상을 정하자.'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회사에 집중해야 하는 분기에도 콘텐츠 생각이 치고 올라왔고, 임신 준비에 온 에너지를 써야 할 때는 회사 스트레스가 파고들었어요. 사람의 뇌는 하나만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 수많은 자극이 몰려오지만, 기준점이 있었기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걸 할 시간이야."
이 한 마디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버티게 해줬어요. 이전에는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한다는 흑백 논리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제는 다른 것들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아직 때가 아닌 것뿐이라는 걸 압니다. 계절이 순환하듯, 기회는 다시 옵니다.
✍🏻 오늘 레터를 3가지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상적인 나다움을 기본값으로 놓으면 현실의 나는 계속 실패자가 된다.
지금 삶의 역할을 짊어지는 것 자체가, 이미 나만의 속도로 나다움을 향해 가는 과정이다.우선순위를 ‘인생의 시간축’을 기준으로 다시 점검하자.
시간축으로 집중할 순서를 정하면, ‘따로 또 같이’ 공존할 수 있다.계획이 어긋나는 순간은 실패가 아니라 신호다.
그 신호를 빨리 캐치할수록 나침반을 다시 잡고 길을 새로 설계할 수 있다.
지금 계획대로 되지 않고 있다면, 잘못 설정된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타이밍입니다.
'잘 해내는 나'보다 '지속 가능한 나'가 더 오래 갑니다.
미리보는 다음 달 혼신기록
다음 달엔 '토대' 이야기예요. 토요일의 대화이자, 삶의 토대를 다지는 루틴. 나를 잘 아는 누군가에게 한 주를 꺼내놓는 것이 왜 가장 단단한 기반이 되는지, 그 이야기를 들고 올게요.
기록에서 신기록으로
이번 달도 당신만의 혼신기록을 응원합니다.
— 단수민 드림
🌕 혼신기록을 읽고 떠오른 생각
기록은 쓰는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읽는 사람 안에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편지를 읽으며 떠오른 생각이 있다면 남겨주세요.
짧은 한 문장도 괜찮습니다 :)
🔵 함께 보면 좋은 기록
결혼, 직장, 창작.
셋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며 고민했던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정리해두었어요.
오늘 레터와 함께 보시면 조금 더 입체적으로 와닿을 거예요.
👇🏻혼신기록 유튜브 〈결혼 전엔 몰랐던, 결혼 후 변하는 것들〉
